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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종의 사고방식과 자유인의 사고방식(갈 5:1)…조용기 목사
조현상 기자  |  johsa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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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3  20: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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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성은 생각을 하나님처럼 믿음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종의 사고방식과 자유인의 사고방식 (갈라디아서5:1)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만 그렇습니까? 여러분 아담의 후손과 오늘 우리들은 종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고 마귀의 종이 된 후 그 후손들인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세상과 마귀의 종으로 살면서 종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가장 비극은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 할 필요 없거니와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까지도 몸은 자유하나 마음은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 한국 사회가 이렇게 혼란합니까?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고, 부정하고, 부패하고, 늘 정치적으로 싸우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이유는 36년 동안 일본의 종살이 했는데, 일본의 종살이 할 동안 일본 정권과 군국주의에 저항하던 그 종의 사고방식을 오늘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해방된 지 이미 반세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종의 사고방식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자유인으로서의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의 오늘날 이런 혼란이 있는 것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은 권위에 대한 반항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바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항했지요.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은 모세에 대해서 반항했거든요. 오늘날 우리 한국 민족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민족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입니다. 한국의 누가 되든 대통령 해먹기 힘들어요. 왜? 권위에 대한 어마어마한 반항을 낳습니다. 국민 전체 속에 반항의식이 꽉 들어차서 뭐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것이 시민단체입니다. 시민단체라든지, 시민은 없으면서 몇 사람 모여서 시민단체만 만들면 피켓도 들고 그냥 반항합니다. 그러니 누가 들어와도 이 나라는 이끌어 갈 수가 없어요. 너무나 반항심이 셉니다. 이게 종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자유의 사고방식이지만 자유인의 사고방식은 저항과 반항을 위주로 하지 않습니다. 권위에 대한 반항심은 바로 타락한 아담 자손들의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궁극적이기보다는 부정적입니다. 종은 언제나 부정적입니다. 종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죽는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모든 것을 보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큼 부정적인 민족이 없어요. 아예 그냥 요사이 신문을 보기가 싫습니다. 전 페이지가 부정적인 이야기로 칠갑을 해놨습니다. 국민이 그 신문기사를 보면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부정적인 것만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종의 사고방식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종의 사고방식은 범사에 낙관적이기보다도 비관적입니다. 모든 것을 비관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망한다. 우리는 못 살게 된다. 우리는 다 절단 났다. 늘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무슨 사건으로 보더라도 안 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지,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비관적으로 봐서 그냥 팔짱을 끼고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게 말했는데,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팔짱 끼고 뒤로 앉는 것입니다. 이게 종의 사고방식 아닙니까? 

   그리고 꿈과 희망보다는 패배나 낙망 적입니다. 앞으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냥 패배주의로 낙망하고 맙니다. 종의 사고방식은 믿음보다도 불안,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믿습니다! 하고 나가지 아니하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종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다가 죽어버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마음의 광야 생활의 광야에서 오늘날 방황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종의 사고방식에 묶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은 자유롭나 마음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몸은 자유롭게 되었는데 마음이 종의 멍에를 메고 종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광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광야에서 살고, 생활이 광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를 종의 사고방식에서 자유인의 사고방식을 갖게 하려고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말합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한다 했는데 우리 생각이 종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주님이 하실 수가 없어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는데 생각이 종의 사고방식을 가졌으니 생활이 종 생활밖에 더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여러분 우리의 종의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종의 멍에에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마귀와 세상의 종살이하다가 보니 인간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종의 사고방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종의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종의 사고방식 옷을 벗기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입히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 겪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죄의 종이 되어서 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우린 별도리 없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없고 우린 죄의 종이다. 그리고 죄인이다. 그러므로 적은 죄를 지으나 큰 죄를 지으나 죄는 다 똑같으니 에라 죄 가운데 살자. 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다 헐어버렸습니다. 죄의 권세와 능력을 십자가에서 멸하시고 그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죄를 다 청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다 이루었으니 너희는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고 주님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가 된 의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의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해요.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의인답게 생각하고 의인답게 말하고 의인답게 행동해야 되겠다. 죄의 멘탈리티에서 의의 멘탈리티로 우리 마음을 바꾸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밖에는 없습니다. 율법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아라, 의롭게 살아라 해도 율법으로써 의롭게 살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보혈의 능력 용서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의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용서와 의와 영광의 옷으로 갈아입어 우리 마음의 생각이 의와 영광의 생각으로 꽉 들어차야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죄에서 해방되고 우리는 의로운 자유인이 됐다는 이런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옷 입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속과 마귀의 종이 되어서, 별도리 없이 우리는 술 취하고 방탕하며 세속적이고 음란하며 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이러한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귀에 묶여 있다. 뭐 별도리 있냐? 그러므로 추하고 악하고 거짓되고 세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린 우리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종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의 사고방식을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므로 말미암아 세속을 다 청산하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 보혈을 의지하면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세속의 옷이 벗겨지고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가 허물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세속과 마귀를 다 이기고 천국을 모신 천국인 이 되고 성령을 모신 성령의 사람으로서 산다는, 그와 같은 자유인의 멘탈리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돼요. 나는 세속의 종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그런 종 된 생활을 하지 말고 우리는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인 이 되었고, 성령인 이 되었으니 천국과 성령을 모시고 우리는 거룩하게 행하며 살 수 있다는 그러한 자신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관과 절망의 슬픔의 종이 아니라 소망과 기쁨의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의 모든 비관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의 모든 마음의 고통을 청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마음에 세례를 받고 마음에 피로써 목욕하고 난 다음 우리는 비관과 절망과 슬픔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낙관적이고 소망 적이며 기쁨으로 충만한 그러한 사고방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며 늘 슬픔이 들어차 있으면 이건 종의 사고방식입니다. 주인이 그런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관적이고 소망 적이며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로 우리에게 값 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질병 의식에 사로잡혀서 연약과 병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나는 병자다, 나는 관절염이다 신경통이다 폐병이다 심장병이다 암이다 온갖 병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병의 사고방식에 꽉 잡혀있어요. 해방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약의 노예가 되어 있고, 언제나 마음속에 병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병 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의 멘탈리티를 주시려고, 그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담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으며,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 병을 청산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우리 생각이 질병의 생각에서 치료의 생각으로, 연약의 생각에서 건강의 생각으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고 건강하고 생명으로 넘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생각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서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으므로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생각이 종의 의식에서 해방된 주인의식으로 바뀌어야 해요. 그리고 저주와 가난의 패배주의적인 멘탈리티가 아닌 아브라함의 복과 예수님의 형통을 받은 사고방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나는 늘 가난하다. 나는 늘 실패자다.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실패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패배주의적인 마음의 저주로 옷 입은 가난의식, 이와 같은 종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런 데서 해방되었습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유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날 가진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데 이 말씀이 우리 마음을 수술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주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주의 사고를 벗어야 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축복과 형통을 얻은 사람이다. 이러한 새로운 자유인의 멘탈리티를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에서 여러분 해방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과 무의 절망의 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멘탈리티를 가져야 해요. 더구나 요사이 가을이 와서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굴면 나이 먹은 사람은 특별히 더 마음에 허무주의의 생각이 가슴을 꽉 채웁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은 죽지 않아요. 그러므로 죽음의 종이 되어서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언제나 허무가 가슴을 메아리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받아들였으면 우리 마음은 허무주의를 내어 쫓아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허무와 절망을 다 내어 쫓아버리고 우리의 생각이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생각으로 옷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으니 우리 마음이 부활로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시니 우린 하나님 아들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 삼중축복을 받아서 죽음과 무의 절망의 멘탈리티 허무주의에서 우리는 부활과 생명과 천국의 영광으로 꽉 들어찬 생각으로 우리 마음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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